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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노 울의 역사


울은 수천 년간 의류에 사용됐습니다. 원시인이 복슬복슬한 야생 양의 가죽을 벗겨 입은 것에서 시작하여 바빌로니아 문명 때 처음 울 생산용 양과 고기 생산용 양이 구분되었으며 로마 시대에는 더 좋은 양털을 위해 품종 개량을 했고 유럽에선 중세 시대에 들어 울의 가치가 더욱 상승했습니다. 18세기 산업 혁명은 직물 산업을 가정에서부터 공방과 공장으로 이동시켰습니다.

메리노 울의 역사

메리노 양은 스페인에서 개발된 품종으로 고품질의 울을 얻을 수 있어 가치가 높았습니다. 1797년 스페인의 로열 메리노 품종 메리노 양이 처음으로 호주에 소개되었습니다.  이미 고품질의 울을 생산했었지만 호주의 목장주들이 품종 개량을 거듭하여 더욱 섬세한 울을 가진 호주 메리노양을 생산하게 되었습니다.

호주 메리노 양은 지금까지 전 세계 패션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아 왔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울은 탄력성이 뛰어나 실용적인 의류, 특히 군복이나 작업복에 주로 사용됐습니다. 하지만 패션계에서 울이 인기를 끌기 시작한 건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코코 샤넬(Coco Chanel) 이 패션계의 공식을 새로이 쓰고 고품질의 울로 드레스를 만들면서였습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울은 패션의 모든 곳에 널리 사용되고 있습니다.

2차 세계 대전 종전은 ‘뉴 룩’이라 불리는 또 다른 패션 혁명을 예고했습니다. 크리스챤 디올(House of Christian Dior)에서 발표한 이 스타일은 울 직물을 과할 정도로 많이 사용한 것이 특징으로 전쟁 당시 배급과 물자 부족에 대한 반발이었습니다.

1954년 파리에서 국제 양모 사무국(IWS) 이 주최한 대회의 드레스 부문에서 젊은 디자이너 이브 생 로랑(Yves Saint Laurent) 이 1등과 3등을, 코트 부문에서는 역시 젊었던 칼 라거펠트(Karl Lagerfeld)가 1등을 차지했습니다. 그들에게 상을 안겨준 심사위원 중에는 위베르 드 지방시(Hubert de Givenchy)와 피에르 발망(Pierre Balmain)도 있었습니다. 패션의 역사가 쓰여지는 순간이었습니다.

클래식과 시대별 인기 스타일들이 오래도록 메리노 울의 덕을 보았습니다. 리틀 블랙 드레스에서부터 브이넥 스웨터와 테일러드 수트까지, 메리노 울은 시대를 초월하는 매력을 지녔습니다. 오늘날 전 세계의 패션 디자이너와 목장주들은 최고의 텍스타일 업체들과 협력해 고품질의 메리노 울 의류를 생산하고 소비자들이 그 이로움을 누릴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메리노 생산

호주의 목장주들은 지난 200여 년 동안 메리노 울 생산에 커다란 진보를 이루어 냈고 지금도 실력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6만 명 이상의 목장주와 수만 명의 종사자가 있는 이 산업에는 호주의 여러 지역 사회가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목장은 가족 단위로 소유하여 운영되며 기술과 자부심이 대를 이어 전해지고 있습니다.

호주는 세계에서 가장 진보된 울 산업을 자랑합니다. 다른 어느 나라에서도 호주와 같이 효율적이고 투명하며 고도로 발달한 울 마케팅 시스템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훈련과 검증을 거친 2만여 명의 울 감정사들이 전 세계의 수출되는 메리노 울을 검사합니다. 거의 모든 수출용 메리노 울에는 시험연구소에서 실행한 객관적인 테스트 결과가 동봉됩니다.

또한 호주의 진보된 시스템은 울 생산지를 추적할 수 있게 하여 메리노 울의 품질과 기원에 대한 자신감을 소비자에게 전하고 있습니다.